💥 이걸 어떻게든 그려내고 싶어서 <전정미>

전정미 작가

2022. 7. 20.

감각하고 표현하고, 소외없이 모든 곳을 보듬을 수 있는 자유

전정미 작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500만 원으로 결혼하기’, ‘출산 뒷이야기’, ‘어느 날, 당신의 전세집이 경매에 넘어간다면?’을 그린 만화작가 불친입니다. 현재 군산에서 남편과 함께 ‘삐약삐약북스’라는 독립 만화 출판사를 운영하며, 수도권 탐방기/지역의 사생활99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기도 합니다.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릴 적, 저랑 굉장히 친한 친구가 한 명 있었어요. 이 친구가 ‘난 죽어도 만화가가 되겠어!’라고 말하는데, 그게 너무 멋있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멋지게 ‘만화가가 될래!’라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웃음)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림을 그리면 칭찬을 많이 받았거든요. 제일 잘하는 게 ‘그림 그리기’니까 열심히 그려서 성공해야지. 어머니의 수고로움을 덜어드려야지. 그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작품 활동 이야기를 부탁드려요.

데뷔작은 ‘내가 좋아하는 걸 그려야겠다,’라는 생각으로 그렸어요. 3년 동안 열심히 그렸는데 연재처가 망했고, 동시에 저도 망해버렸죠. 집안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라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역량이 없었고 결국 만화를 그만뒀어요. 그렇게 29살. 남편과 결혼을 준비하는데 지금 만화를 그리지 않으면 다신 그리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500만 원으로 하는 결혼식을 하는 목표를 세우면서 그 과정을 만화로 남겼죠. 그러다 모 연재처에서 40회 정도 연재를 하게 됐고, 아이를 낳은 뒤에는 ‘출산 뒷이야기’라는 만화도 그리게 됐습니다.

출판사도 운영하고 계신다고 했는데,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남편과 저는 10년 넘게 만화가로서 활동을 했어요, 그러다 군산에서 ‘지역 청년 창업가’를 모집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뭐라도 해보자 싶어서 ‘출판사’로 지원을 했죠. 당시 지역 독립서점이 늘어나고 있던 추세였어요. 특히 월명동 시간 여행 마을에 위치한 ‘마리서사’라는 서점에 자주 갔어요. 그렇게 서점을 다니다 해당 지역의 도서를 모아두는 코너를 유심히 보게 되었어요. 지역의 이야기를 담은 만화가 보고 싶어졌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지역에 관련된 만화는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럼 우리가 지역(비수도권)에 관련된 만화를 한번 만들어볼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가 읽고 싶은 내용이고, 누군가 읽고 싶어 할 수 있는 내용이라는 확신이 들었거든요. 그렇게 지역 청년 창업가로 선정이 됐고, 2019년도 10월 10일 ‘삐약삐약북스’를 창립했습니다.

삐약삐약북스의 '지역의 사생활 99'대해 설명해 주세요.

지역 소멸을 이슈로 한 만화 서적이에요. 2021년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 인구를 초월했다고 해요. 지역의 인구가 거의 빠져나가고, 대부분의 문화매체는 서울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죠. 뉴스부터 시작해 드라마, 영화의 배경 또한 수도권의 이야기를 많이 다루고 있음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이런 부분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지역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고 있어요. 지역을 정하고 그 지역에서 거주하거나 관심이 많은 만화 작가를 매칭해 책을 만드는 거죠. 1년에 9권. 11년 동안 99권을 만드는 게 목표이자 우리의 포부에요. 올해 시즌3가 오픈되면 총 28권의 도서가 발간될 예정이에요.

작가님도 ‘지역의 사생활99’에 참여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작품에서 페미니즘 요소가 돋보여요.

네. ‘지역의 사생활99 군산 편 <해망굴 도깨비>’는 군산을 배경으로 한 일제강점기 시절 수탈의 역사와 성 착취의 역사를 함께 다룬 작품입니다. 애초에 이 작품을 고안하게 된 계기는 저희 시할아버님과 할머님 이야기를 듣고 난 뒤였어요. 선비 가문에서 자란 할머님은 시집갈 때, 자기가 썼던 소설과 책을 가지고 갔대요. 그런데 할아버지가 그걸 다 태워 없애며, 여자가 글을 알면 집안이 망한다고 하셨대요. 그래서 ‘과거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뭔가를 만들어보려고 했어요. 그러다 같은 군산 지역에서 활동하고 계신 조종안 기자님으로부터 군산의 성착취 역사에 대한 강의를 듣게 되었어요. 너무 속상하고 화가 많이 났죠. 이걸 어떻게든 그려내고 싶어서 그 전에 그렸던 콘티들을 싹 다 갈아엎고 처음부터 다시 작업하게 됐고, 여러 번의 수정을 거듭하여 비로소 작년 5월에 출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성 예술인으로 작업을 해나가실 때 힘드셨던 기억이 있나요?

대학시절 열정적이고 그림도 정말 잘 그리는 선배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선배들이 어떤 여자 학우를 딱 집어서 쟤는 얼굴도 못생겼고, 그림도 못 그리고 게으르다며 욕하여 웃는 거예요. 그 대상은 점차 다른 학우들에게로 이동을 했고, 울면서 학교 작업실에 나오지 않게 되는 학우도 생겼죠. 저는 침묵했어요. ‘나는 아니니까.’ 그러다 수도권으로 이동해서 선배들과 함께 만화제작센터에 입주하게 되었어요. 그 공간에서 저만 여자였는데, 대놓고 여자 벗은 사진을 보여주거나, 제가 바로 앞에 있는데도 신음 소리를 내는 일들이 비일비재했어요. 그러다가 제가 게으르고 자신들이 생각했던 예술성이 없다며 뒤에서 욕을 하거나 제 말을 무시하기 시작했죠. 심지어 만화제작센터에 있던 나이 많은 남성 담당자 또한 저를 성추행을 했어요. 생활고 문제도 있었지만 이런 일들도 20대 때 만화를 그만두게 하는 결정적인 요소였어요. 이제는 떠올리고 싶지 않네요.

앞으로 준비하고 있는 작품이 있나요?

‘아메리칸 타운’이라고 아실지 모르겠어요. 군산에 미군 ‘위안부’ 시설이 있었던 곳이거든요. 군산에 살고 있는데도 잘 모른다는 분들이 많아요. 거기서 돌아가신 분도 많은데 말이죠. ‘지역의 사생활99 군산 편<해망굴 도깨비>’가 일제강점기에 성 착취당했던 여성들의 이야기와 현재 이야기를 관통하는 맥락이었다면, 이 작품은 미군 ‘위안부’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자 합니다.

현시대를 사는 여성 예술인들에게 어떠한 희망이 되고 싶으신가요?

제가 어떤 희망이 될 수 있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여성 예술가로 활동하면서도 여성 창업가, 사업가로 열심히 활동해서 누군가에게 좋은 자극을 줄 수 있는, 그런 희망이 되고 싶습니다.